‘진실 추구’만큼 중요한 ‘피해 최소화’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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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박영흠 칼럼]

'저널리즘은 누군가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보도하는 일이다. (Journalism is printing what someone else does not want printed).'

조지 오웰의 말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저널리즘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정당하고 때로 필요합니다. 권력을 가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수록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더 편안해질 테니까요. 누가 뭐래도 저널리즘의 본분은 진실을 찾아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그런 상황에 무디어지면서 언론인들 사이에는 이상한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기자는 이유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불편하게 만들어도 용인받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겁니다. 심지어 그런 행태를 '기자다움'으로 받아들이며 장려하기까지 합니다.

적잖은 기자들이 상처를 주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늦은 밤에 집요하게 전화를 거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홍보팀 직원에게 온갖 '갑질'을 하고,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지는' 걸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허락 없이 사무실이나 집에 들어가 남의 물건을 가져오던 시절도 있었지요.

비록 언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무고한 시민에게 민폐를 끼쳐도 용서받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건 아닙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잊고 지냈던 무심함이 모이고 쌓여 기자라는 직업 집단 전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학생을 인터뷰하며 "친구가 사망했다는 걸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던 그 무심함 말입니다.

언론윤리 강령에는 이미 이런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국내외의 여러 윤리강령이 첫머리에서 강조하는 가치는 '진실 추구(Seek Truth)'입니다. 언론 본연의 임무인 만큼 두말할 나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엔 이러한 목표와 배치될 수 있는 또 다른 가치를 강조합니다. 바로 '피해 최소화(Minimize Harm)'입니다.

미국기자협회(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윤리강령 제2조는 '공중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취재하는 일과 그것이 빚어낼 잠재적 피해와 불편 사이에 균형을 잡을 것'을 요구합니다(Balance the public's need for information against potential harm or discomfort). ‘뉴스를 좇는 일이 오만함이나 과도한 침범의 면허증이 될 순 없다'는 겁니다(Pursuit of news is not a license for arrogance or undue intrusiveness).

2021년 1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함께 제정한 '언론윤리헌장'도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강조합니다. 기자는 '취재대상을 존중’하며,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특히 '공인이 아닌 일반 시민에 대해 보도할 때는 인격권 보호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11월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 취재진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집 앞에 찾아가 인터넷 생중계를 한 일이 논란이 됐습니다. 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한 장관을 부르고 배달된 택배물을 뒤졌습니다. 2019년엔 <TV조선> 기자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혼자 사는 오피스텔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린 사건도 있었지요.

이들에게도 명분은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취재는 공익을 위한 행동이므로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공익'이라는 추상적 단어는 어쩐지 공허하게 들립니다. <더 탐사> 기자의 '공익'과 <TV조선> 기자의 '공익'이 아무런 교집합 없이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영논리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공익'이라는 명분은 한없이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당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취재'라 이름 붙은 행위의 진짜 목적일 것입니다. 취재는 '기사의 재료가 되는 사실 정보를 얻기’ 위한 활동입니다. 기자의 행동이 국민의 ‘알권리' 영역에 속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는지, 단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욕보이는 수단으로 이용됐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오래전 수습기자들에게 '경찰서장 방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도록’ 시켰던 관습이 나름대로 권력을 긴장시키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됐던 건 상대에게 모욕을 줄 목적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시청자나 구독자들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망신 주거나 응징해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건 결코 취재가 아닐뿐더러, 공익과도 무관합니다.

취재대상이 시민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권력을 가진 '공인'인지 여부도 중요합니다. 공인에 대한 언론의 집요한 취재는 어느 정도 용인되며, 공인은 일정한 사생활 정보의 노출을 감내해야 합니다. 정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거 지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이라면 기자의 '뻗치기'도 허용될 수 있습니다. 본래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은 공인의 집 앞에서 이루어지는 취재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공인의 가족에게까지 무분별한 취재로 인한 불편을 견디라고 요구할 순 없습니다. 권력행위와 관련되지 않는 한 가족의 사생활과 권리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시민을 대신해 고위공직자를 취재한다는 명분이 가족에게 미치는 피해의 면죄부가 될 순 없습니다. 기자들이 공인의 집을 찾아가는 취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진실 추구'의 가치만큼 기자라는 직업을 빛나게 해주지도 않고 회사의 수익 창출에 도움을 주지도 않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피해 최소화'는 언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주는 대단히 중요한 윤리 원칙입니다. 뉴스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기레기'라는 조롱이 표준어처럼 쓰이는 한국 사회에서 그 가치는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언론인들은 그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피해 최소화' 원칙을 가슴에 새기고 ‘진실 추구' 못지않게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힘 있는 자와 싸우라고 민주주의가 부여한 힘을 엉뚱한 곳에 휘두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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