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교사, 다음 장병,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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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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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 2017년 1월 대기업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여고생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특성화고 애완동물과에 다니던 여학생은 소위 욕받이 부서라고 불리는 통신사 해지 방어팀에서 극도의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해, 구조되었지만 3일 뒤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현장실습 나간 업체에 취업해 스크린도어 사고로 희생된 김 군이 아니어도 특성화고를 비롯한 실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때마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어디선가 현장실습 고등학생이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다. 고등학생의 현장실습 현실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왜 계속 회사에 나가느냐고 말한다.

실습현장-초등학교-해병, 위험 내몰리는 젊은 목숨들

임용 2년차 새내기 교사가 연륜 있는 교사들도 정신적 고통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실 내 학교폭력 건으로 조력자 없이 학부모들의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 행태를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일터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학교장을 비롯한 교육당국은 그 무언의 메시지에 등골이 서늘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해당 학교 가정통신문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문구로 가득했으며 일부 언론에서는 수거해간 일기장을 근거로 남자친구 운운하며 개인적인 죽음으로 몰고 가려 했다. 동료 교사들이 증언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죽음은 개인적 차원의 죽음으로 폄훼되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혹자는 그렇게 힘들었으면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느냐, 그렇게 힘들면 교사를 그만두면 되지 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느냐 희생자를 탓하는 말을 한다.

평생을 국가에 봉사해 온 현직 소방대원이 10년 만에 얻은 외아들이 해병대 입대 몇 달 만에 실종자 수색 임무에 투입되었다가 희생되었다. 군 당국은 신속하게 순직을 결정하고 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그러나 우리는 해병대 일병이, 그것도 포병대대 소속 장병들이 왜 안전장비 하나 없이 급류에 등떠밀려 들어갔는지 그 진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창졸간에 자식을 잃은 고 채수근 상병의 부모야 두말할 것이 없지만, 함께 작전에 투입된 자식을 둔 부모도 내 자식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참담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이 겪을 트라우마가 걱정돼 어떻게든 만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 인권센터는 고 채수근 상병 소속 부대에서 지난 주말 사이 생존 병사 가족들의 휴가, 외출, 외박, 면회 요청을 다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지휘부는 부당한 명령도 모자라 동료를 잃은 생존 장병들이 겪을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출생률 저하를 걱정하며 엄청난 예산을 쓰는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이 서 있는 현주소다. 실종자를 찾으면 14박 15일 포상휴가를 주겠다며 훈련경험도 없는 장병들에게 맨몸으로 급류에 들어가 수색하라 독려하고,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학교 관리자들은 교사 본인에게 맡겨두고 책임을 회피한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약속하고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현장실습생이니 차후에 주겠다 말을 바꾼다. 성실하게 일하던 열아홉 여고생이 죽어도 학교와 교육청, 기업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교실과 아이들을 사랑한 스물 셋 젊은 교사가 목숨을 끊어도 학교장, 교육 당국 누구도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스무 살 장병이 전투명령도 아닌 대민 지원임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책임있는 단위의 사죄가 없다.

아무도 사죄하지 않는 ‘다음’ ‘다음’의 죽음들

이럴 때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 숙여 사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학생인권조례가 빚은 교육파탄의 단적인 예라며 종북 주사파가 추진한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는 극우 유튜버 저리 가라할 입장을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 내놓았다. 가짜뉴스가 아닌가 눈과 귀를 씻고 다시 볼 지경이니 사회적 재난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그 자체로 심각한 결격사유다.

차오르는 분노에 다음 교사는 누구이고 다음 장병은 누구인가 소리치고 싶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다음 소희>. 이 영화는 전국의 모든 어른들이 봤으면 좋겠다 싶은데, 자본은 공동체가 함께 생각해볼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쉬 보게 하지 않는다. 한국영화 최초로 지난해 칸느영화제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음에도 개봉 당시 상영관이 많지 않아 관객 수는 11만여 명에 머물렀다. 그러나 사회적 부조리가 타파되지 않는 한 시의성이란 ‘늘, 지금’이므로 늦어졌다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위에 소개한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큰 얼개로 만든 만큼 현장을 리얼하게 반영하고 있어 보는 내내 심장을 아프게 한다.

현장실습 중이던 여고생 소희의 죽음이 단순 사건이 아닌 강요에 의한 산재사건임을 알게 된 형사 유진은 자살인지 타살인지만 밝히면 된다는 상급자에게 질문한다. 교육청도 노동청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런 걸 경찰이 수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왜 죽었는지 알려는 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녀는 담임교사를 만나고 교육청과 기업을 방문하며 사회적인 죽음임을 항변한다. 그녀가 맞닥뜨린 여고생 죽음의 최종 책임은, 취업률을 학교지원금과 연계하는 교육부에 있다. 늘 그렇듯 사회적 죽음의 원인 그 정점에 정부가 있다. 모든 것은 국가의 정책이 결정하고 법과 제도가 뒷받침하는 것이니 왜 안 그렇겠는가. 법도 제도도 다 갖춰져 있지만 현장실습의 운영과 관리의 주체가 불분명하니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실습생들의 사고는 서로 책임을 돌리면 그만이다. 권한이 작은 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도 참아내야만 하는 소희의 남자친구인 현장실습생에게 “다음에도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나한테라도 괜찮으니 말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장실습생 소희는 곧 서이초 교사이고 채수근 상병이다. 직무와 위치가 다를 뿐 청년들은 각 분야의 밑바닥에서 온 몸으로 부조리를 받아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하급자에게 미뤄지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분노하고 그 분노가 닿을 곳이 없어 좌절한다.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미뤄지고 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청년들. <다음 소희>의 소희와 서이초 교사의 자살은 노동권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결과이며 채수근 상병의 죽음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결과다. 이들은 모두 권리는 없고 책임만 강요되는 현실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다. 다음 소희, 다음 교사, 다음 장병은 누구일 것인가.

권력형 범죄 혐의자들이 조장하는 각자도생의 현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며 정치적인 죽음이다. 자살은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점에서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하지만, 설명되지 않는 모든 죽음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공동체 일원들이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바로 정치적인 죽음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은 개인적인 죽음으로 의미를 축소시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은 그러게 왜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았느냐고 사회적 · 정치적 죽음에 2차 가해를 서슴치 않는다. 후진국형 참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159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와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리고 서이초 교사와 해병대 장병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과 신속한 추서를 통해 속히 마무리 지으려는 군 당국을 지켜보는 국민은 참담하다. 보수가 집권하면 살인율과 자살률이 동시에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통계로도 밝혀진 바, 국민은 자신과 자식들이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살벌하고 불안한 각자도생의 현실을 목도한다.

어른다운 어른,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은 지위에 걸맞은 권한 행사와 이에 따른 책임을 떠안는 태도에 있다. 어느 누구도 내 책임이라 말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과연 어른은 있는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심지어 대통령 부부의 권력형 사리사욕 범죄와 장모의 경제범죄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사회가 청년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태원 참사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린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진상규명을 통해 엄중한 문책과 처벌,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참사 희생자에 대한 최고의 추모이다. 그러나 정작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말단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국민적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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